스물하나……, 스물둘…….
소녀는 담벼락에 그려진 새를 세고 있었다. 녹색 언덕과 푸른 바다, 바다보다 약간 옅은 청색의 하늘. 하늘에 뜬 흰 구름만큼 흰 새들이 언덕 위의 나무 한 그루에서 구름을 향해 날아오르는 그 그림은 사방이 모두 회색과 적색의 담으로 가로막힌 작은 골목에서 유일하게 생기가 도는 것이었다. 담 뒤에는 족히 100년은 되었을 법한 벚나무가 서 있었고, 그 잎들 뒤로 붉은 벽돌로 세워진 3층 집이 언뜻 보였다. 살짝 분홍기가 도는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소녀의 창백하다고 느껴질 만큼 흰 손가락이 새 한 마리를 짚을 때마다 소녀는 조그맣게 소리 내어 숫자를 올렸다.
북태평양에서부터 불어오는 것일 바람이 담벼락들로 이루어진 좁은 골목길을 돌아 나갔다. 소녀는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고는 그림으로 눈을 돌렸다. 아까의 것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림. 하지만 소녀는 숫자를 셀 때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또…… 날아가 버렸네…….
소녀는 귀를 기울여도 듣기 힘들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또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가장 왼쪽에 있는 새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하나…….
바람은 불규칙적으로, 그러나 자주 불었다. 소녀는 서른을 넘기지 못 했다. 여름의 긴 낮이 천천히 지나갈 무렵, 소녀는 스물넷을 세고 있었다.
스물다섯…….
여름 하늘 위를 참새가 지나가며 노래했다. 어느새 도시에서 듣기 어려워진 참새의 소리. 그 위에 산들바람이 슬며시 겹쳤다.
또 날아가잖아-!
소녀는 골목 어디서건 들을 수 있게, 크고 맑게 소리 질렀다. 그 호통에 놀란 듯 참새는 노래를 멈추고 벽돌 집 지붕 위로 사라졌고, 바람도 잠잠해졌다. 하지만 소녀는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담벼락을 마주한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 오늘은 다 세려고 했는데…….
조금씩 그 크기를 확장해가는 태양의 노란빛이 소녀의 검은 머리칼을 비췄다. 희미한 적갈색이 태양빛에 드러났다. 소녀는 담벼락에 그려진 새들을 세지 않고 하나씩 짚었다. 그리곤 새들의 눈을 차례로 주시하며 말했다.
너희들, 내일 나 올 때까지 여기 있어!
소녀는 그대로 발을 돌려, 골목을 지나 사라졌다. 담벼락에는 흰 새들이 소녀가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은 모양으로 똑같은 위치에 있었다.
여름의 노란 달이 하늘에 걸려 있는 어느 순간에, 골목은 담벼락을 넘어서지 못 하는 소리로 수군거렸다. 새들은 낮과 똑같았다. 아니, 눈과 색이 달라져 있었다. 하나 있는 창백한 가로등 빛은 새들을 비추지 못 했으나, 하늘에 떠 있는 노란 달빛은 희미하게나마 새들의 윤곽을 드러냈다. 그리고 새들의 눈은 담벼락에 그려진 구름을 향하던 낮과는 달리 각자의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걔 말인데, 언제부터 우리를 세기 시작했지?
새의 목소리는 높았지만 조용했다. 별빛처럼, 받는 이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 이따금씩 생각하게 되는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벌써 일주일은 넘었을 걸? 우리 말고 다른 얘들한테도 물어 봐야지.
하루에 바람이 몇 번이나 부는 데, 언제 다 만나서 물어봐?
그럼 모르지. 우리가 처음 본 날부터 오늘을 세 보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달님한테 물어보자. 달님, 걔 언제부터 우리를 셌어요?
바보야. 달님은 밤에만 오시잖아. 낮에는 안 계셔.
그런가? 그럼 누구한테 물어 봐야 돼? 해님은 무서우신데.
그리고 바람이 불었다. 새들의 모양은 방금 전, 바람이 불기 전과 같았다. 하지만 새들의 눈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새들의 눈은 모두 구름을 바라보고 있다가, 아까의 새들처럼 각자의 방향을 찾아 갔다. 그것이 비록 아까의 새들이 보여준 것과 같은 방향이었지만.
들었어? 어떤 여자애가, 낮에 있는 애들을 세고 있대.
난 낮에 있는 애들이랑은 별로 안 친해. 근데 그걸 세려는 바보도 있어?
정확히 말해. 세려는 바보가 아니고 못 세는 바보 아냐?
그런 얘기는 필요 없지 않아? 그나저나,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 다 못 셌다던데?
정말 바보 아냐?
내가 보기엔, 이런 얘기 자체가 필요 없어 보여……. 나 잘 테니까, 조용해 줘.
넌 만날 자니? 우리가 유일하게 빛 보는 시간이 지금인데?
벽돌집 안에서 자정을 알리는 무거운 종소리가 울렸다. 뎅……, 뎅……, 뎅……. 종소리가 끝나자, 갑작스레 역풍이 불었다. 이 좁은 골목을 벗어나지 않는, 골목의 끝에서 끝까지만 부는 역풍. 역풍은 오늘 하루 동안 이 골목을 지나쳤던 바람을 모두 합친 것만큼 오랫동안 불었다.
순식간에 제 자리를 찾아 구름을 향하게 된 눈들. 이번의 눈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그림으로만 남아 있었다. 대신 변한 거라면, 담벼락 뒤에 서 있는 큰 벚나무. 벚나무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분홍 꽃잎을 가득 가지고 있었다. 오늘 낮에 보았던 녹색 잎 달린 벚나무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새로 달린 꽃잎을 살짝 흔드는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물들기라도 하듯, 꽃잎들은 녹색으로 색을 바꾸며 그 모양도 함께 바꿔 다시 낮의 벚나무로 돌아가 있었다. 산들 바람을 타고 밤하늘을 떠가던 구름 하나가 그 변화를 바라 보다 중얼거렸다. 중얼거림이라고는 하지만, 아마도 벚나무 근처에 있는 개미집의 개미들도 모두 들었을 정도의 크기. 하지만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넌, 아직도 그 기억을 못 버리니? 어차피 지나간 거잖아. 물론 다시 올 테지만. 그렇게 빌어서까지 그 때로 돌아가는 거야?
벚나무가 응답했다. 구름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구름님도, 회전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언젠간 비가 되실 거고, 강을 흐르시고, 바다에 뜨시고, 다시 하늘로 오르시고.
벚나무의 대답에 구름은 웃었다. 폭풍우가 이는 날의 천둥소리만큼 크게. 그는 조금씩 더 세게 일기 시작하는 바람을 타 속도를 내며 벚나무에게 말했다.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 나쁜 게 아니지만, 너무 매달리면 좋아 보이진 않아. 난 내가 구름일 때는 바다나 강을 생각하지 않아. 물론 얼마 안 가서 비가 될 테니, 비에 대해선 생각하곤 하지. 물론 그렇다고 너처럼 빌어서 비가 되려고 하진 않는다고.
사람들은 제가 꽃잎을 달고 있을 때만 예쁘다고 하는 걸요. 구름님은, 무슨 모습을 하건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물론, 네가 꽃잎을 달고 있을 때가 제일 예쁘다고는 하더군. 내 취향은 아니지만.
구름은 웃으면서 천천히 하늘을 가로질렀다. 몇 차례 바람이 불었으나, 새들의 눈은 변하지 않았다. 어느덧 태양이 서서히 솟아올랐다.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기 위해 뛰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아침을 깨웠다. 새들도 그 소리에 깨어났다. 그리고 저 멀리서부터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작은 중얼거림도.
오늘은, 꼭 세야지.
걸어오는 소녀에게 신문을 배달하는 청년이 말을 걸었다.
오늘은, 꼭 다 세길 빌어. 힘내.
응,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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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에 작성했던 파일이라 폰트나 크기, 문단 들여쓰기 등이 복사할 때 귀찮아지는 글입니다.
이 글에도 쌍따옴표는 쓰지 않고 있지만, 대화와 서술 사이에 공백은 없어진 모습입니다.
뭐 내용은 대충 보다시피 현대물 위에 살짝 덧칠해놓은 판타지군요. 주요 등장인물은 '소녀', '새들', '벚나무', '구름', '신문 배달 청년' 정도.
주인공은 벚나무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말고.
꼴에 뒤돌아보지 말고 앞이나 신경써라는 메시지를 구름님께서 친절하게 남겨주시고 있군요.
하지만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제 사상 중 하나는 "세상은 후회하기 위해 사는 거니까, 후회를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후회하자"입니다. 조금 다르지만 표현하면 대충 이래요.
근데 난 뭘 낯 부끄럽게 이딴 속마음을 늘어놓고 있는 거지...
지금 와서 궁금한 게 있다면 저 소녀의 모델 캐릭터인데... 과연 누구였을지? 아무튼 트윈테일은 아닐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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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 때의 은색은 로리콘이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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